[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Philomena)
: 아픈 역사가 된 안타까운 모정
/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 주디 덴치, 스티브 쿠건 출연
줄거리
얼굴이 수 많은 주름이 자리잡은 할머니, 필로미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마음 속에 홀로 간직하고 있던 비밀을 딸에게 털어 놓는다. 50년 전 자신이 빼앗긴 아들에 대해서.
50년 전, 젊고 활발한 처녀였던 필로미나는, 한 순간의 실수로 임신을 하고 만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런 행동은 종교적 죄악이자 수치로 치부되었기에, 아버지는 필로미나를 수녀원에 넣어 두고, 인연을 끊는다. 수녀원에서 아이를 낳은 필로미나는, 수녀원에서 시키는 고된 노동을 참아내면서, 하루 1시간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삼아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은 엄마인 필로미나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아들을 입양시켜 버린다. 그 후로 50년 동안, 필로미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삼키며 살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우연히 만난 전 BBC기자인 마틴 식스미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책을 쓰기 위해 소재 거리를 찾고 있던 그는, 취재를 위해 필로미나의 아들 찾기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물질과 뒤바꾼 수많은 아이들
영화는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곤궁한 시절을 견디기 위해, 미혼모의 아이들을 입양아로 둔갑시켜 미국으로 보냈다. 물론 돈을 받고. 영화 속에서는 '가톨릭 신자고, 1천 달러만 내면 누구든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나온다. 수녀원에서는 갈 곳 없는 미혼모들을 거두어 준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그녀들을 죄인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그녀들의 노동력을 하루 12시간 가까이 착취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단 한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엄마들의 처지를 이용해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받고, 그를 빌미로 자기들 마음대로 아이를 돈 받고 미국으로 입양 보냈다.
이러한 내용은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13년 2월에 총리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아일랜드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서는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입양 기록을 모두 없앤 후였고, 때문에 약 1만 명에 가까운 아일랜드의 미혼모들은, 아직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찾지 못한 상태라고.
용서, 해야 하나?
필로미나는 참 웃음 많고, 순진하고, 어찌 보면 대단히 답답하기도 한 할머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하며 입 한번 꿈쩍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벌인 수녀원을 탓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탓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다. 도대체 당신이 뭘 잘못했냐고 소리치는 마틴에 맞서, 기어이 자신의 잘못을 고하겠다며 고해성사를 하러 성당에 들어간 필로미나. 그러나 그곳에서 결국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나오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이 이미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긴 자책에서 빠져나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제 과거의 일과 더불어,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아 버린 그들의 만행이 추가로 드러난 후에도,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화가 나서 방방 뛰는 건, 그 과정을 내내 함께 한 마틴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란, 그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를 할 때만 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들은 뉘우치기는커녕 뻔뻔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필로미나는 말한다. 용서하겠다고. 그리고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마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 얼굴을 보라고.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면서, 그런 모습으로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나는 용서하겠다고.
필로미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그 용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아까운 삶을 보내고 싶지 않은, 차라리 그 시간을 이용해 사랑하는 이들을 더 많이 돌아보고픈, 깊은 마음이 담긴 용서였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에 동의하고, 과거의 일을 알리기로 했다. 자신은 비록 용서를 했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
영화는 믿기 힘든 과거의 진실과, 그 속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인간의 추악함, 그와 더불어 한없이 강인하면서도 여린 한 어머니를 그려내고 있다.
인간은 수많은 과오를 저지르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는무엇을 볼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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