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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 오아시스 - 도심 속 사막에서 발견한 작은 오아시스

스위벨 2014. 3.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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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 오아시스 (東京オアシス, Tokyo Oasis)

– 도심 속 사막에서 발견한 작은 오아시스

 

/ 마츠모토 카나, 나카무라 카요 감독

/ 고바야시 사토미, 카세 료, 하라다 토모요 출연

 

 

 

낯익은 얼굴을 가진 여자 토코. 어디서 분명 본 듯하지만 막상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는, 그런 무명 배우다. 영화는 크게 3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진다. 여주인공 토코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만난 3명의 사람들을 따라서.

 

 

한밤중의 도로. 촬영장을 빠져 나온 토코는 무심코 도로로 뛰쳐나가다가,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양상추를 배달하는 청년의 차에 우기듯 올라탄 그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청년이 가는 곳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한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삭막하기 그지없는 바다에 도착한 그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양상추 청년은 떠나고, 토코도 금새 그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걸어간다.

 

 

한적하고 낡은 극장. 영화가 끝나고 극장의 직원은 잠든 토코를 깨운다. 그리고 토코는 그녀를 보고 잠시 놀란다. 극장의 직원은 전직 시나리오 작가였던 키쿠치. 그녀는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시나리오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야말로 도망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토코는 다시 한번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말한다.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힘들지, 혹은 어려울지는 써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라고.

 

 

한낮의 동물원. 매표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온 미대지망 5수생 야스코. 그녀는 땅돼지 우리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토코를 만나게 된다. 운에게 버림받은 것 같다는 야스코. 그림은 잘 그리지만, 벌써 5번째 도전을 하기까지, 번번이 입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토코와 함께 동물원에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

 

무작정 타인의 차에 올라 고속도로를 달리며 한밤의 일탈을 감행했던 토코는,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삭막한 바다에 도착한다. 그녀에게 양상추 배달 청년은 이렇게 묻는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거죠?"

"네. 도망쳤어요. … 내가 오고 싶었던 곳이 바로 여기예요. 꼭 와야만 했던 곳이기도 하고요."

"여기라고요?"

"… 난 늘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어요. 멀리 도망치면 칠수록 그만큼 빨리 되돌아와 맹공격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깜깜한 밤중에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도로로 달려들었고, 그 순간은 꼭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더 이상은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그녀는 별로 더 나을 것도 없는 삭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도, 자신이 꼭 와야만 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도망은 항상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오아시스를 만나듯 다시금 극장을 찾고, 동물원을 찾는다. 그래서 그녀는 동물원에서 만난 야스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된 후에는... 혼자 도망치면, 돌아올 때도 혼자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 잠시의 오아시스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잠깐의 오아시스 같던 동물원.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장소. 하지만 동물원의 폐장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그녀는 같이 있던 야스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갈게요."

"어디로요?"

"……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 나도 가야지."

 

동물원의 폐장을 알리는 방송은 "이제 마법은 끝났어,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알림을 듣고 토코는 당연히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듯, 망설이지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동물원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어느새 혼잡한 도시에 섞여 들어 저벅저벅 걷는다. 혼자서, 거침없이, 마치 먹이를 구하러 사바나의 밤을 혼자 나아가는 땅돼지마냥.

 

 

 

 

 

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이 건조한 도시에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뜨겁기만 한 사막의 현실을 피해 너른 바닷가, 혹은 싱그러운 숲 가까이, 그도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그 이상향, 유토피아를 향해서.

그러나 훌쩍 떠날 수 없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토코가 한밤의 일탈에서 다시금 돌아와야 했듯, 직장, 집, 가족, 경제… 수 많은 이유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메마른 사막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

 

내 삶이 팍팍하다 느낄 때,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을 헤매는 것만 같을 때, 오아시스를 찾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키고, 약간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멈추지 않고 사막을 마저 건널 것이 아닌가. 오아시스가 있기에, 사람들은 사막에서도 삶을 이어간다.

 

 

◇◆◇

 

요 몇년 사이 TV나 책, 영화에서도 힐링이 대세고, 특히 일본 영화계에서는 이런 치유 (혹은 슬로우라이프) 영화가 잘 팔린다고 하고, 또 그만큼 많이 만들어진다. 하도 비슷한 영화가 많아 이제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찾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휴식과 치유에 목말라 있다는 뜻일 게다.

 

잘 만들어진, 혹은 영리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익숙해진 탓인지,  그동안 '고바야시 사토미' 군단이 출연했던 <카모메 식당>, <안경>, <수영장> 등과 같은 다른 슬로우라이프 무비들과 비교해 감흥도 덜하다. 다만 앞선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하기 힘든 먼 곳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안달복달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작업이었다는 게 의미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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