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추리소설] 이유 – 미야베 미유키

스위벨 2013. 12.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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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유 – 미야베 미유키 

   

   

고급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가족 4명 살해 사건! 그 끔직한 사건에 세상은 금새 떠들썩해진다. 하지만 그 사건의 이면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하나씩 찾아가야 한다. 그 감추어진 이유들을.

   

 

부동산, 경매, 버티기꾼

   

이 이야기에서 사건의 주요 소재는 바로 부동산과 경매다. 고급 아파트를 둘러싼 경매 시스템 상에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사회문제.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부른다.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한 사건도 사실은 아파트 경매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살해당한 일가족은 '웨스트 타워'의 원래 거주자가 아닌 다른 가족이었던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후 이들은 이른바 '버티기 꾼'이었던 걸로 밝혀진다.

 

고이토는 자신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지자, 부동산 업자와 손을 잡고 가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와 연계된 가족이 가짜 임대계약인으로 그 아파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이들이 바로 '버티기꾼'이다.

이렇게 임차인으로 가장한 버티기꾼이 있으면, 경매를 통해 아파트를 낙찰 받은 사람도 그들을 단번에 내쫓고 아파트에 대한 자신의 권리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 이유, 이유

   

하지만 버티기 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실이 밝혀진다. 마치 가족처럼 행세했던, 살해된 그들이 실제로는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와 중년 남자, 그리고 중년 여자와 젊은 청년으로 구성되어 4인 가족처럼 한 집에 살았던 그들은, 실은 가족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심지어 함께 일을 꾸민 부동산업자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연이어 여러 가지 물음이 쏟아져 나온다.

 

- 그들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살해당했을까?

- 원래 주인도 아닌 사람들이 왜 그 아파트에 들어와서 살고 있었을까?

- 가족도 아닌 그들은 어째서 가족 행세를 하며 살아야 했을까?

   

그리고 그 물음만큼이나 많은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이야기이자, 여정이다. 그 이유를 한 꺼풀씩 벗겨 낼 수록 사건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고, 그 끝에서 비로소 전말을 알 수 있게 된다.

    

 

 

타인이 되어 가는 가족, 가족이 될 수 없는 타인

   

이 소설 속에는 많은 가족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주요한 소재가 '집'이고 '경매'다. 그리고 '집'은 곧 가족의 상징이다. 한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장소이고, 가족이 함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하여 집은, 함께 하는 이들을 가족이라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최소한의 여건이다.

   

아파트의 원래 주인인 가이토는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가족이 함께 할 장소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버티기 꾼으로 들어온 가족들은, 살 곳이 필요했기에 그 일을 승낙한 것이다. 한편 새롭게 그 아파트를 경매로 낙찰 받은 이시다는 가족들을 하나로 모아주고, 그 가족의 이름을 단단히 지키기 위해 그 집이 필요했다.  

   

가이토와 이시다의 가족들은 점점 흩어지려 한다.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 속에서 멀어지고, 점차 가족이란 이름이 희미해져 간다. 반면 가족이 아닌, 살해당한 스나카와 일행은 타인이었음에도 가족이란 이름이 필요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만났고, 필요에 의해 함께 모여 살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결코 가족일 수 없었다.

 

책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 가족의 붕괴와 구성원들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결국은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후일담, 떨어지는 긴장감

   

이 책은 벌어진 사건을 긴박하게 쫓아가는 소설이 아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모든 게 다 밝혀지고 난 후, 르포 형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르포 작가가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 취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사건은 이미 다 끝난 시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건을 취재하는 화자도,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도 이미 그 사건을 지나온 후이니 당연하다. 사건 속에서 한참 안달복달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아, 그땐 그랬지요. 걱정 했었죠. 많이 놀랐었어요…' 하는 느낌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왜 이런 형식을 취했을까?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은 가족을 등장시키려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굳이 가족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인물의 가족들까지 소설에서는 다루고 있다. 잠시 엑스트라일 수도 있는 인물의 가족을 모두 소개하고, 그 가족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좀 사건을 진전시키려나 하면, 또 다른 인물이 나오고, 그들의 가족 소개가 한참 나온다. 그래서 초반에는 심하게 지루하기도 했다.

   

사건을 숨가쁘게 따라가는 소설에서는 중간중간 맥이 뚝뚝 끊기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는 늘어지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르포'라는 사후 취재 형식을 취한 것이리라. 읽는 동안은 그 느린 흐름이 아쉽기는 했으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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