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추리소설] 신참자 - 히가시노 게이고

스위벨 2013. 12. 15.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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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참자 - 히가시노 게이고

 

"이 거리에는 몇 개의 거짓말과 비밀이 잠들어 있다."

 

일본 추리 소설계의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다. 그의 책은 '못해도 반절은 한다', 는 생각으로 꽤나 꾸준히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잉 아이>나 <백은의 잭>같은 작품의 결말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책들에서도 한번 들면 쭉 읽어가게 만드는 그 흡입력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추리소설 <신참자>는 한 지역에 새로 부임해온 '가가 교이치로'라는 형사와 때마침 그 지역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이 주축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해낸 매력적인 인물,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가가 형사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붉은 손가락> 등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형사다.

 

피해자는 혼자 살던 40대 여자.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가가 형사는 거리로 나선다. 옛 일본의 정취가 살아있는 특별한 동네, 그곳에서 가가는 피해자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짧은 9개의 이야기, 하나의 큰 결말

   

9개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만나 하나의 큰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각 단편의 화자는 가가 형사가 만난 그 지역의 사람들이다. 각 편에서 모두 화자가 달리 나오면서, 그 화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가 본 가가 형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들은 전체가 하나이면서, 또 각각의 단편이 하나의 완결한 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전통 그릇을 파는 가게의 사람들, 커피가게의 종업원, 보험회사 직원, 팽이를 파는 가게의 주인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각 편마다 다르게 나온다. 이들은 모두 가가 형사가 탐문 시에 만난 사람들이다. 이들 각각의 이야기가 단편 하나에 녹아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신참자의 시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가가 형사가 '신참자'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오래도록 그 동네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 동네에 익숙한 형사였다면, 굳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굳이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사건이 일어난 지역 구석구석을 살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가 형사는 그 곳에 새로 부임해 온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 동네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알기 위해 오랜 시간들 들이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 장소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던 사람이었다면 당연시 여겨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사실들을,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다.  

   

   

   

마음 따뜻한 추리 소설

   

가가 형사는 탐문 중에 만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속에 있는, 미처 말하지 못한 비밀과 감정을 슬그머니 끄집어 낸다. 미처 몰랐던 부모의 마음, 자식의 마음, 연인의 마음, 혹은 다른 이를 배려해주느라 입을 다물었던 보험사 직원의 비밀 등등을.

살인 사건을 다루는 추리 소설도 이러한 방식으로 쓸 수 있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비록 잔인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게 이야기의 주축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결코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한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만나 따뜻하고 밝고, 명랑하다. 

가가 형사는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에 따라,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가득 담겼다. 마치 최근에 나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온기 가득한 시선을 닮아 있다고나 할까?

 

 

◇◆◇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쓰는 작품의 거의 대다수가 아주 당연한 듯이 영화, 혹은 드라마로 만들어 진다. (이 책도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일단 책이 발간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상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드는 힘을 찾자면, 쉽게 읽히는 문체, 다음 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 전체적인 스토리의 탄탄함, 이야기의 참신함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과 더불어, 그 동안 읽었던 그의 책들을 떠올려 보니, 하나가 더 생각 났다. 바로 사람을 보는, 사회를 보는 그 따뜻함이다.

   

그의 책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물론 악인이다. 목숨을 빼앗는 살인이란, 어떤 걸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임에 틀림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일부 스릴러나 여타 추리 소설에서 보는 차가운 냉혈한, 사이코 패스와 같은 악당과는 다르다.

그의 작품에서 범인은 오로지 금전적 이득이나 잔혹한 살인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죄를 저지르고도 갈등하고, 후회하고 번민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 점들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내내 흥미진진했으며, 읽고 나서는 거부감 없이, 기분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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