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추리소설]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스위벨 2013. 11. 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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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끔찍한 살인 사건에 숨겨진 인간의 다양한 내면과 감정.

과연 당신이 직면한 진실은 무엇인가? 

 

 

추리소설 치고는 꽤나 방대한 양의 책이다. 3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보통 책의 두께로 출간했다면 5~6권은 족히 나올 분량이다. 이 책이 그 두꺼운 외용을 자랑하는 건, 같은 사건에 연관된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범인의 숨은 얼굴

 

사건은 한 공원에서 시작한다. 평화로운 일상의 공원에서 느닷없이 발견된 사람의 팔.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들.

실종된 여자들의 시체가 발견되며, 범인은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피해자 가족에게 잔인한 전화를 걸기도 하고,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말하기도 한다. 범인에게는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범인은 자신의 연출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대중 앞에 나서고, 경찰을 조롱하고, 피해자 가족을 괴롭힌다. 자신의 천재성과 우월함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범인이지만, 좀처럼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는다. 

 

 

1권에서는 이런 대략적인 줄거리가 이어진다. 경찰과 피해자 가족, 범인을 모르는, 범인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1권 말에서 범인이라 추정되는 두 명의 인물이 죽음을 맞이한다. 

2권에서는 1권에서 풀었던 사건의 이야기들을 범인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낸다. 처음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동안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건을 벌였는지에 관해서. 1권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추측했던 모습들과 어떻게 다른지, 각자가 다가서는 방법이 어떻게 다르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이다.

그리고 3권에서는 범인이 아닌 인물들이 숨겨진 진실에 다가서는 일련의 과정들을 그린다.  

 

 

 

사람 중심의 사건

 

등장인물들이 꽤나 많다. 주요 줄거리를 담당하는 인물들도 많고, 작은 조연으로 출연했다 사라지는 인물들도 많다. 하지만 조연이라 해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는 않는다. 작가는 최대한 자세히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직접 피해를 입은 유족, 범인을 쫓는 경찰, 르포 작가, 주유소 직원, 유족의 지인, 그리고 가해자의 가족... 저마다의 생각과 입장과, 어느 날 급작스럽게 벌어진 같은 사건을 놓고 그들이 치러야 하는 각자 다른 무게들을 말이다.

이 책의 목적은 범인을 잡는 게 아니다. 범인을 일찌감치 독자에게 오픈하고, 그 남아있는 긴 시간을 끌고 나가는 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은 말이야, 그냥 재미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살면 되는 그런 게 아냐.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짓을 저지르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니라고."

 

"네가 비참하게 죽인 건 네가 말하는 대중이니 뭐니 하는 무리 속에 끼웠다 뺐다 하는 부품이 아냐. 어느 누구나, 한 사람의 어엿한 인간이었어. 죽은 이들 때문에 상처입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모두 한 사람의 인간이야. 그리고 네놈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발버둥친다 한들, 아무리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한들, 네놈 역시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아. 비뚤어지고, 망가지고, 어른이 될 때까지 소중한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손에 쥐지 못한 불쌍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야."

 

"네놈은 아까 그 누구도 네 이름을 잊지 못할 거라고 했지? 하지만 그건 틀렸어. 모두 잊어버릴 거야. 네놈 따위를 누가 기억하지? 구차하고, 비겁하고, 숨어서 거짓말이나 지껄이는 살인자 따위를. 하지만 너는 잊을 수 없겠지. 모두가 네놈을 잊어버려도, 넌 너 자신의 존재를 잊을 수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널 잊어버릴 수 있는지, 네 놈 따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머리를 싸쥐게 될 거야.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겠지. 그게 네놈이 받게 될 가장 큰 벌이야." 

   

천재임을 자처하며 우매한 대중의 머리 위에서 세상을 주무르고 싶었던 살인자에게, 피해자의 유족인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해 주는 말이다. 이 말속에 이 소설의 주제가 모두 담겨 있다.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그 많고 많은 산을 넘어온 것이다.

 

 

 

차가운 사건, 따뜻한 사람

 

어떤 궤변을 늘어놓아도, 자신이 천재라 생각하고 있어도, 살인자는 그저 살인자일 뿐이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그러한 사건에 휩쓸려 지나간다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무게를 견디며 일상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악의로 인해 누군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평생의 슬픔을 져야 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위로가 되고, 자신의 본 모습을 깨닫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며 일상을 이어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이 소설 속 살인 사건의 방식은 섬뜩할 만큼 잔인하다. 한 인간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도록 계획을 세우는 범인에게서는 도저히 인간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단지 글을 읽고 있을 뿐인데도, 몸으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질 만큼.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 소설이 사람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따뜻하다. 사회 속에 설령 비뚤어진 얼마 간의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이런 인간 사회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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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한 일간지에 5년 동안 연재했던 글이었다고 한다. 그가 이 글을 집필한 오랜 시간만큼이나 작가는 인간의 태도와 따스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악의와 분노, 그리고 죄책감 등의 감정에 대해 심도 깊고 다양하게 보여준다.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잔혹한 범인.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사건의 끔찍함에서 감정이 멈추지 않고, 더 큰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건 바로 이렇게 신중하고 다양하게 사람을 보여준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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