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 화차 – 미야베 미유키
형사인 '혼마'는 수사 중에 입은 부상으로 잠시 쉬고 있다. 그런 그에게 아내의 사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약혼녀가 실종된 사건의 수사를 부탁한다.
'세키네 쇼코'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하다가, 심사 과정에서 개인 파산한 과거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녀의 약혼자인 사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얼마 후, 자신의 흔적을 모두 감추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파산했던 과거를 약혼자인 사촌이 알게 된 것 때문에 잠시 연락을 끊은 것뿐이라고 생각한 혼마는, 쉬는 동안의 무기력함을 달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세키네 쇼코의 파산 기록을 보고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건은 큰 변환을 맞이하게 된다. 한참 동안이나 쇼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오던 혼마는, 그녀의 사진을 변호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변호사는 사진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닙니다.
당신은 나에게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여기서부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 '세키네 쇼코'란 이름으로 불리던 그 약혼녀란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약혼녀가 가짜라면, 진짜 세키네 쇼코는 어떻게 된 것일까?
혼마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진짜 '세키네 쇼코'의 흔적을 밟아간다. 그녀의 흔적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세키네 쇼코의 이름을 빌려 가짜 삶을 살던 그녀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쳐 갈 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의 무게는 버겁기만 하다.
이 책의 제목인 화차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불수레'를 뜻한다. 영화 포스터이기도 했던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 화차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더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책의 사건을 이끄는 가짜 '세키네 쇼코'는, 자기의 몸이 타 들어 갈 걸 알면서도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를 탈 수 밖에 없었던 여자다.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순식간에 삶의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여자였다.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는 그것이 재앙의 수레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 수레에 몸을 싣는다. 그 수레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 고통을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내달리기 시작한 수레는 좀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자본'으로 인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한 가정이 있다. 평범한 삶만을 바랐던 그녀는, 그 속에서 점점 악인이 되어가고, 결국 치명적인 악행을 저지른다. 그녀가 저지른, 그리고 저지르려는 행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녀를 잔인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짐은 누가 져야 할까?
이 책에서의 악인은 '세키네 쇼코'다. 그건 아무리 연민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해도 그건 어찌할 수가 없다. 그녀의 악한 선택으로 죄 없는 누군가가 죽었고, 누군가가 다쳤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을 뒤쫓은 혼마의 시선은 그녀를 단지 악녀로만 보지는 않는다. 혼마는 세상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던 그녀를 향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뜨거운 불수레, 화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느냐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 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세키네 쇼코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자기 앞에 손을 내민 혼마를 향해, 과연 그녀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수레는 지옥 문 앞에 이르렀다.
◇◆◇
우리나라에서 배우 김선균과 김민희, 조성하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조성하 역의 '혼마' 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되면서는 약혼자 김선균의 역할이 크게 늘어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은 혼마 형사의 시각으로 '세키네 쇼코'라는 여자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영화는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김선균의 시각이 더 강해졌기에, 한층 더 감정적으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90년대 초의 일본이라고 한다. 그때, 일본은 경제의 거품이 사그라 들면서, 많은 사회적 문제점들을 낳았던 시기다. 경제 활황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용으로 흥청망청 써대고, 돈이 돈을 만들던 시기를 지나, 그 부질없는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 많은 가정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일본의 그 즈음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 나라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무척이나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 책장 사이의 망상 > 추리, 스릴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레몬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4.01.15 |
---|---|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4.01.09 |
[추리 소설] 내가 그를 죽였다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4.01.05 |
[소설]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4.01.03 |
[소설] 누군가 - 미야베 미유키 (0) | 201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