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결혼하는 여자] 결혼에서 로맨스를 지우면?
예전에 방영했던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이란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그 마지막 장면은 꽤나 강렬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한고은이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거실에 앉아, 이미 예전에 죽은 아버지를 울면서 부르는 것으로 장면이 마무리 되었다. 그것이 김수현 작가가 그린 <사랑과 야망>이란 드라마의 끝이었다.
우리 엄마는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말이 자막으로 나오고 나서도, '정말 끝난 거야?'하고 재차 물으셨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마무리 방법이었고, 화제가 되었다. 그에 대해 작가는, "등장인물의 흘러가는 삶 속에서 끝냈다."고 밝혔다.
드라마가 끝나도 등장인물은 여전히 삶을 계속 하는 듯이, 그렇게 끝냈다. 그건 드라마에 강한 현실성을 덧입히겠다는 의도이기도 했다. 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보면서 <사랑과 야망>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결혼해 대해 적당히 꾸밈이 들어가는 '환상'과 '로맨스'가 드라마의 필수 요소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그 '달달한 로맨스'를 걷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연애'가 아니라 '결혼'을 말하겠다는 드라마의 제목과도 그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은수(이지아)는 이미 한 번의 이혼 후, 다시 재혼한 여자다. 전남편과는 사이가 좋았지만, 도저히 그 막돼 먹은 시댁을 견딜 수는 없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 딸아이가 하나 있다. 돈만 밝히는 친할머니 밑에서 키우기가 싫어서, 위자료 한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자신이 데리고 왔다. 그러나 재혼하는 남자의 부모님은 그 아이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결혼을 포기하려 했을 때, 남자는 3년 후에 꼭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게 하겠단 약속을 했다. 그래서 그와 결혼했다. 은수는 여자로서의 자기 삶을 버릴 수 없어 그렇게 재혼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언니마저 '남자 때문에 애 버린 엄마' 취급이다. 언젠가 데려갈 거란 말을, 가족 중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재혼 후 아이를 친정 부모님이 키워 주었지만, 아빠에게 가겠다는 아이의 뜻에 따라, 전남편에게 돌려보내야 했다. 3년 후 아이를 데려오게 해주겠다던 현재 남편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고, 은수는 어느 정도 실망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 상태다. 게다가 남편은, 과거의 연인과 깨끗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질척거리고 있다. 물론 은수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결혼은 그렇다. 한때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으나, 결국은 시댁을 못 견디고 끝내야 했던 결혼. 재벌가로 재혼했지만, 그 허울 좋은 미명아래 자신을 조금씩 포기해가는 결혼. 굳은 약속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결혼. 언젠가는 남편의 숨겨진 과거를 마주해야 하는 결혼. 결혼식장에서 바람둥이 신랑이 도망가버리는 결혼. 부모님이 막무가내로 조건 맞추어 밀어붙이는 결혼. 재벌 남자를 사랑한 죄로, 그의 숨겨진 여자가 되어야 하는, 그리하여 이미 꿈꾸는 것조차 포기한 결혼.
그리하여 그런 결혼에 대해 아무런 바람도 희망도 없이, 자기 인생에서 결혼을 버린 듯한 등장인물도 하나쯤은 등장한다. 바로 은수의 언니, 현수(엄지원)다.
서영희, 조한선과 엄지원의 상황이 일부 극적이게 그려지고 있기는 하나, 역시 사랑에 대한 달콤한 기대는 없다. 남자역의 조한선은 결혼식장에서 파토 내고 도망갔으면서도, 금새 다른 여자 힐끔거리는 바람둥이다. 좋은 직업과 말짱한 허우대와는 달리, 상당히 많이 지질하다. 이 드라마가 가진 사랑에 대한 환상이라면, 이혼한 부인을 잊지 못하는 100점짜리 아빠, 정태원(송창의) 정도랄까.
드라마의 제목처럼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은수는 한 번의 결혼을 더 해야 한다. 그 마지막 한 번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전남편 정태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정태원은 그녀를 그리워하고, 자기 딸을 살뜰히 챙기는 좋은 남편감이니 말이다. (다만, 그 목청 큰 시어머니가 문제일 뿐.)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 대한 로망을 지우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 대한 가장 커다란 환상을 그리게 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빙자한 어느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강력한 현실성의 옷을 입은 드라마가, 앞으로 어떤 판타지를 그리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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