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이름 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청산가리로 누군가를 무차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네 번째 피해자는 한 할아버지다. 이름은 후루야 아키토시. 편의점에서 산 팩에 든 우롱차를 마셨는데, 그 속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로, 경찰 수사만이 진행되고 있다.
그즈음, '스기무라 사부로'는 아르바이트생인 '겐다 이즈미'의 문제로 사립탐정인 '기타미'란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그는 한 회사의 사보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인 '겐다 이즈미'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과 싸우고, 출근도 하지 않으며, 막상 해고를 통보하자 마구 악을 쓰며 회사에 난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탐정의 집에서 여고생 미치카를 만난다. 그녀는 청산가리로 죽은 '후루야 아키토시'의 손녀였다. 스기무라는 우연히 쓰러진 미치카를 도와주게 되고 그때부터 미치카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그는 미치카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해 주며 미치카를 돕는다. 하지만 살해범은 잡히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겐다 이즈미'는 점점 더 집요하게 스기무라를 괴롭히려 든다.
이름 없는, 그래서 더욱 무서운 독
책 속에는 여러 종류의 '독'이 등장한다. 사람을 살해한 맹독 '청산가리',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새집 증후군과 토양오염', 그리고 사람이 지닌 '독'이 그것이다.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그 독의 이름은 무얼까. …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잡을 수도 있다.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안에 있는 독의 이름을 알고 싶다. 누가 내게 가르쳐다오. 우리가 품고 있는 독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한 사람이 지니는 악의, 삐뚤어진 마음, 그릇된 피해의식, 잘못된 분노의 표출… 이 여러 가지 것들을 '독'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 독이 생겨난 이유조차도 제각각이며, 그 독이 뿜어져 나오는 방향과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그러기에 피하는 법이나 제거하는 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독은 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스기무라 사부로의 아내는, 집 안에 독이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자비를 들여 토양 조사를 진행하고, 모든 걸 꼼꼼히 따져본 후에 이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철저한 행복의 공간으로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집에도 독이 들어오고 말았다. 잠깐 방심한 순간, 겐다 이즈미의 독이 자신들의 집을, 그리고 가족을 침범했다.
무차별적 악의
청산가리로 누군가를 살해한 그는 이른바 '무차별적' 살인을 저질렀다. 누가 먹고 누가 죽어도 상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분풀이를 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억울한 불행을 책임질 그 '누군가'.
'겐다 이즈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늘 화를 냈고, 억울해 했다. 자신보다 행복한 누군가를 참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아무리 품어보려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아군인 가족들조차 모두 적으로 돌리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다. 세상이 그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한 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겐다 이즈미는 '스기무라'를 견딜 수가 없었다. 다니는 회사 회장님의 사위, 돈 걱정 없고 화목한 가정. 그런 주제에 자신에게 그럴 싸한 설교를 늘어놓는 모습을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운이 좋아 모든 걸 다 가진 주제에, 네가 뭘 알아!"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악의는 스기무라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딱히 스기무라일 필요는 없었으나, 그 곳에 스기무라가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인물에 대해 부족함 없이 사는 행복한 탐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기무라 사부로는 정말이지 부족함 없는 행복한 남성이다. 착한 아내와 너무도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부자 회장님을 아버지로 둔 아내 덕에,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행복한 탐정이란 존재는 참 미묘하다. 자신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평범이란 자체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에게는 그 '평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겐다 이즈미의 말마따나, "행복한 네가 뭘 알아!" 하는 마음이 기어 나오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행복한 탐정을 그리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탐정소설에서 그려지는, 결핍 있는 사람들끼리,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돕고 사는 그런 사회 말고, 조금 더 여유로운 처지의 사람들이 더욱 손을 내밀고 누군가를 돕는 상황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 속의 스기무라 사부로는 다른 이들의 처지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오지랖을 발동시켜 이런저런 사건 속으로 슬슬 기어들어가고 만다. 행복한 자신의 성에서 자신들끼리만 살지 않고, 불행에 빠진 이들을 조금씩이라도 돕는 행복한 탐정, 그리고 상황적으로 그럴 여유가 있는 탐정. 조금이라도 더 여유 있는 자들이 이 사회에서 '오지랖 넓고 사람 좋은, 사부로'와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희망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독을 건드려 독에 물들기 전에는, 우리는 늘 이 세상의 독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독의 이름을 알고 싶다면 직접 찾아 나서세요. 당신이 스스로 밝혀 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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