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이 내린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고요하게. 그러나 소란스러움을 감싸듯이 넓게. 오랜만에 마음이 잦아드는 기분이다. 눈의 그 고요함이, 어느새 스르륵 옮겨오기라도 한 것 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늘상 있던 그곳인데, 늘 있던 그곳이 아니다. 눈을 밟는다. 천천히, 그러나 무게를 실어서 진득하게. 내 발자국이 남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사라진다. 아, 다행이랄까, 안심이랄까. 지워진다. 덮여간다. 아주 잔잔하게. 그런 흔적 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