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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딴방 - 신경숙 : 우물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시간들

스위벨 2014. 7. 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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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딴방

 마음의 우물, 그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시간들


/ 신경숙 지음



간혹 말을 하기 힘든 책들이 있다. 단순히 감동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그러나 나조차 알 수 없는 깊은 어딘가로 한 없이 침잠하게 만드는 책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의 시작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도 픽션도 아닌 중간쯤이라 했으니, 그 말은 결국, 이 글은 사실이기도, 픽션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소설 속에는 작가의 시간이 녹아 있다.



거기였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한, 우리들의 외딴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게보였다. 구멍가게나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육교 위또한 늘 사람으로 번잡했었건만,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



열여섯 시절, 가난해서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게 되었던 그때.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큰오빠가 사는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산업체 학교를 다녔던 경험. 오빠, 외사촌과 함께 단칸방에서 지내야 했던 시절. 변두리에 37칸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그러나 몸도 마음도 외따로 떨어진 듯했던 그 외딴방. 그 때 만났던 사람들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크나큰 상처와 상실. 그리고 그 시대가 지닌 굴곡의 아픔까지.


 

그 시린 과거의 시간과 교차하여,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 글을 쓰는 현재의 '내'가 보여진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에 대한 작가의 심경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작가의 깊은 우물을 엿본다. 작가가 감추어두었던 은밀한 우물. 그리고 그 우물 속에서 힘겹게 끌어올려내 소설로 토해 놓으며 느꼈을 작가의 쓰라림이, 이 어설픈 독자에게도 어스름하게나마 느껴진다. 그래서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여전히 간혹 책장을 펼칠 때마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눌러 읽는다. 마치 초등학교 때 손에 연필을 꾹 쥐고 온 몸의 힘을 다해 글씨를 쓰던 그 순간처럼.

  


바람이 부는지 우물이 출렁였다. 그녀가 신선한 냄새를 풍기는 물 속에서 두리번거렸다.

"뭘 찾아?"

"네가 빠뜨린 쇠스랑."

"뭐 하려고?"

"내가 끌어내 주려고…… 그러면 더 이상 네 발바닥이 안 아플 거야."

그녀가 우물 속 가장 외진 협곡 속에 잠겨 있는 쇠스랑을 일으켜 세운다. 물길 속엔 또 얼마나 많은 물길이 있는지. 그녀 손에 쥐어진 쇠스랑이 질질 끌린다. 물보라. 우물 속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회오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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